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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처음엔 인사동 쌈지길을 단순한 쇼핑몰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낮과 밤을 나눠 방문하고 나니 이곳이 단순히 물건을 파는 공간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나선형 구조(spiral ramp)를 따라 층을 오르내리며 햇살과 조명이 만드는 분위기 차이를 경험하고, 작은 공방들에서 직접 만든 수공예품들을 구경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하지만 몇 가지 아쉬운 점도 분명 있었습니다.

 

쌈지길 내부 구조 사진
쌈지길 내부 구조

구조와 자연 장점

큰 특징은 '개방형 아트리움(open atrium)' 구조입니다. 여기서 아트리움이란 건물 중앙을 뚫어 하늘을 볼 수 있게 만든 공간을 의미합니다. 일반적인 백화점이나 쇼핑몰처럼 층마다 벽으로 막혀 있지 않고, 1층부터 4층까지 중앙 공간이 개방되어 있어 어느 층에 서 있든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습니다. 이 구조 덕분에 낮에는 자연광이 건물 전체를 골고루 비춰 별도의 조명 없이도 밝고 쾌적한 분위기가 만들어집니다. 낮 시간대 쌈지길을 걸으면 공방에서 흘러나오는 원목 냄새, 가죽 냄새, 손으로 뜬 종이의 질감이 훨씬 선명하게 느껴집니다. 저는 2층 '두 오름길'에서 가죽 공방을 구경했는데, 장인이 직접 가죽을 재단하고 염색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런 수공예 작업은 자연광 아래서 봐야 색감과 질감이 제대로 보입니다. 실제로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자료에 따르면, 공방형 매장은 자연광 환경에서 제품 완성도가 평균 23% 높게 평가된다고 합니다(출처: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혼자 여행할 때 쌈지길의 낮은 더없이 소중했습니다. 누구의 속도에 맞출 필요 없이 난간에 기대어 아래층 사람들의 움직임을 구경하기도 하고, 작은 소품 하나하나의 디테일을 찬찬히 뜯어보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특히 겨울철 오후 2~3시경에는 햇살이 유리창에 부딪혀 산란(diffused light)을 만들어냅니다. 산란광이란 빛이 직접 들어오지 않고 여러 방향으로 퍼져서 부드럽게 공간을 채우는 빛을 말합니다. 이 빛 아래서 보는 도자기나 목공예품은 그림자가 부드럽게 떨어져 훨씬 입체적으로 보입니다. 다만 평일 낮에 방문했을 때 방문객이 예상보다 적어서 조금 씁쓸했습니다. 2019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인사동 방문객 수는 연간 약 1,200만 명 수준이지만, 최근 3년간 약 18%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출처: 통계청). 활기가 줄어든 만큼 여유롭게 구경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운영되는 매장 수가 줄어들지 않을까 우려되는 부분입니다.

낮과 밤 공방 체험

해가 지고 나면 이곳은 완전히 다른 공간으로 변신합니다. 낮의 주인공이 '자연광'이었다면, 밤의 주인공은 '인공조명 레이어(lighting layer)'입니다. 레이어란 층층이 쌓인다는 의미로, 각 상점마다 다른 색온도의 조명이 켜지면서 따뜻한 노란빛부터 차가운 백색광까지 다양한 빛의 층이 만들어집니다. 이 빛들이 유리창에 반사되어 골목 전체를 오렌지빛으로 물들이는데, 마치 작은 유럽 골목길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저는 밤 산책 중에 3층에서 캐리커처 공방을 발견했습니다. 작가님이 펜 끝으로 제 얼굴 윤곽을 잡는 약 15분 동안, 주변에서 들리는 다른 관광객들의 웃음소리와 멀리서 들려오는 거리 공연 소리가 묘하게 어우러졌습니다. 완성된 그림 옆에 지난여름 바다 여행 추억을 상징하는 조개껍데기와 파도 그림을 추가 요청했는데, 작가님이 즉석에서 디테일을 더해주셨습니다. 이런 '즉흥 맞춤형 작업'은 대형 프랜차이즈에서는 절대 경험할 수 없는 이곳만의 강점입니다. 밤 시간대 쌈지길의 또 다른 매력은 '여백'입니다. 낮보다 방문객이 적어서 혼자만의 시간을 온전히 즐길 수 있습니다. 4층 테라스에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보면, 층층이 쌓인 조명들이 마치 별자리처럼 반짝입니다. 이 풍경을 혼자 감상하며 여행의 의미를 되새기는 시간은 그 어떤 관광 프로그램보다 값졌습니다.

 

개선점 필요

개선이 필요한 부분도 있었습니다. 야간 운영 시간이 생각보다 짧다는 점입니다. 주변 상점들이 대부분 오후 8~9시에 문을 닫기 때문에, 밤 무드를 충분히 즐기기에는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만약 금요일이나 토요일만이라도 야간 개장 시간을 오후 10시까지 연장하고, 옥상 테라스에서 소규모 버스킹이나 야간 전시를 기획한다면 '밤의 인사동'을 대표하는 문화 거점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휴게 공간이 부족하다는 점도 아쉬웠습니다. 나선형 통로를 따라 계속 걷다 보면 다리가 고단해지는데, 중간중간 앉아서 쉴 벤치가 거의 없습니다. 4층 옥상 하늘정원 외에는 편하게 앉아서 이 멋진 건축미를 조망할 공간이 부족합니다. 층별로 한두 곳만 무료 쉼터를 추가한다면 방문객 만족도가 크게 높아질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정형화 문제입니다. 초창기 쌈지길은 신진 작가들의 실험실 같은 공간이었는데, 최근에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기성품이나 비슷한 체험 상점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쌈지길만이 가질 수 있는 '희소성'과 '수공예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는 입점 브랜드를 선별할 때 더 까다로운 기준을 적용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직접 제작 비율 70% 이상', '대량생산 제품 입점 금지' 같은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세운다면, 쌈지길의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차별화된 경험을 제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전히 매력적인 곳입니다. 낮의 자연광과 밤의 조명 연출이 만드는 분위기 차이를 모두 경험해 보시길 권합니다. 혼자여서 더 완벽했던 이번 여행의 기억은 한 장의 캐리커처와 함께 제 마음속에 깊게 새겨졌습니다. 여러분도 이번 주말, 지하철 3호선 안국역에서 내려 5분만 걸어가 보세요. 분명 예상치 못한 순간에 쌈지길이 다정하게 말을 걸어올 겁니다.


참고: https://blog.naver.com/pkj5456/2238139899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