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해돋이 명소라고 하면 으레 '멀리서 바라보는 풍경'을 떠올리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향일암은 달랐습니다. 제가 직접 올라가 보니, 이곳은 풍경을 보러 가는 곳이라기보다 오르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경험이 되는 곳이었습니다. 친정 식구들과 함께한 새해 첫 여행이라 더 각별하게 남았고, 그날의 기억을 기록해두고 싶어 이 글을 씁니다.

 

향일암자 아래서 본 계단 사진
향일암자 아래서 본 계단

계단 난이도 실제는 달랐습니다

향일암을 쉽게 다녀올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솔직히 저는 예상 밖으로 만만치 않다고 느꼈습니다. 입구부터 정상까지 이어지는 탐방로(探訪路), 즉 방문객이 걸어 올라가는 공식 참배 동선은 꽤 가파른 구간이 반복됩니다. 여기서 탐방로란 사찰이나 문화재 구역 내에 조성된 공식 보행 경로를 의미합니다. 단순히 계단 수가 많은 것과는 다르게, 좁은 바위틈 사이를 몸을 숙여 통과해야 하는 구간도 있었습니다. 처음엔 그냥 걷기 좋은 길이려니 했다가 중간쯤에서 부모님 발걸음이 느려지는 걸 보고 속도를 확 줄였습니다. 이런 구조는 사실 불교 사찰 건축에서 말하는 산지가람(山地伽藍) 배치와 관계가 깊습니다. 산지가람이란 평지가 아닌 산중이나 절벽 지형에 사찰을 세우는 방식으로, 참배자가 자연스럽게 몸을 낮추고 마음을 가다듬으며 오르도록 설계된 구조입니다. 향일암은 그 전형적인 예라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오르다 보면 단순히 힘들다는 느낌보다, 걸음 자체가 수행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옵니다. 저는 그 감각이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방문 전 미리 알아두면 좋을 사항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경사가 있는 구간이 반복되므로 고령자나 관절이 좋지 않은 분은 등산화 또는 밑창이 두꺼운 신발 착용을 권장합니다.
  • 좁은 바위 통로 구간에서는 대형 캐리어나 유모차 통행이 어렵습니다.
  • 새해 기간에는 참배객이 급증하므로, 이른 시간 방문 시 혼잡을 피할 수 있습니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향일암은 통일신라 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전해지며, 현재 전라남도 문화유산으로 관리되고 있습니다(출처: 문화재청). 천 년이 넘은 사찰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 보면, 그 길을 걷는 느낌이 또 달라집니다.

동자승 메시지

계단을 오르다 보면 곳곳에 동자승(童子僧) 석상이 놓여 있고, 그 옆에 짧은 글귀가 새겨져 있습니다. 동자승이란 불교에서 어린 수행자를 형상화한 석상으로, 사찰 곳곳에 친근한 분위기로 배치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관광지에 흔히 놓인 장식물이려니 하고 지나칠 수도 있는데, 저는 그날 그 문장들이 꽤 깊이 들어왔습니다. 다리가 무겁고 숨이 살짝 차오르는 순간에 짧은 문장 하나를 마주하면, 오히려 그 피로가 멈추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쉬어 가려고 멈춘 게 아니라, 문장을 읽느라 자연스럽게 발걸음이 느려지는 것입니다. 가족들과 함께 그 메시지를 읽고 잠깐씩 이야기를 나눴는데, 누군가는 공감했고 누군가는 웃으면서 넘겼습니다. 그 온도 차이 자체가 재밌었습니다. 입구 쪽에 자리한 삼불상(三佛像)도 눈에 띄었습니다. 삼불상이란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입을 막은 세 석상을 뜻하며, 나쁜 것을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말라는 불교적 가르침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그 앞에 서니 자연스럽게 스스로를 돌아보게 됐습니다. 여행지에서 이런 감각이 드는 건 흔한 일이 아닙니다. 또한 오르는 길 중간에 해탈문(解脫門)이 있습니다. 해탈문이란 번뇌에서 벗어나 자유의 경지로 들어선다는 의미를 지닌 불교 건축물로, 사찰의 주요 입구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엄마는 그 앞에서 "해탈하고 싶으니까 갈게"라며 웃으셨는데, 평소 사진 찍는 걸 좋아하지 않으시는 분이 먼저 문 앞에 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한국관광공사 조사에 따르면 국내 가족 단위 여행에서 문화·역사 유산 방문 만족도는 자연경관 방문과 비교해 재방문 의향이 더 높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습니다(출처: 한국관광공사). 향일암은 자연과 역사와 정서적 울림이 한 곳에 모인 공간이라는 점에서 그 이유를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향일암에서 본 바다 전망

정상 부근에서 내려다본 여수 남해 바다는 솔직히 말해서 설명하기가 좀 어렵습니다. 사진을 아무리 찍어도 그 넓이와 공기가 담기지 않습니다. 제가 직접 눈으로 봤을 때의 그 탁 트인 감각은, 아래에서 올려다보던 풍경과 완전히 다른 차원이었습니다. 이날처럼 맑은 날에는 일조량(日照量)이 풍부해 수평선 너머까지 선명하게 보입니다. 일조량이란 일정 시간 동안 지표면에 도달하는 햇빛의 양을 의미하는데, 남향을 향해 열려 있는 향일암의 지형 특성상 오전 시간대에 특히 채광이 좋습니다. '해를 향하는 암자'라는 이름이 단순한 시적 표현이 아니라는 걸, 직접 서 보고 나서야 실감했습니다. 가족과 함께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 자체가 주는 무게감이 있었습니다. "올라오길 잘했어", "힘들었는데 보람 있다"는 말을 서로 자연스럽게 주고받게 되는 공간이었습니다. 혼자였다면 조용히 감상하고 내려왔겠지만, 가족이 함께였기 때문에 그 감동이 말로 확인되고 기억으로 고정됐습니다. 내려오는 길에는 부각이나 갓김치를 파는 가게들이 늘어서 있어 시식하는 재미도 있었습니다. 올라갈 때의 긴장이 풀리면서 가족들과 수다를 떨며 걷기에 딱 좋은 분위기였습니다. 힘들어도 올라가 볼 가치가 있는 곳이라는 말, 저도 이제는 자신 있게 할 수 있습니다. 단 한 가지 덧붙이자면 편한 신발은 필수입니다. 새해 국내 여행지를 찾고 있거나, 부모님과 함께 의미 있는 하루를 보내고 싶다면 향일암을 한 번 고려해 보시길 권합니다. 풍경이 기억에 남는 여행도 있고, 그날의 감정이 오래 남는 여행도 있는데, 향일암은 후자에 가까웠습니다.


참고: https://blog.naver.com/41stella/224235767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