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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가기 전 설악산 계곡 한 곳쯤은 꼭 걸어보고 싶었던 저는 십이선녀탕계곡을 선택했습니다. 선녀들이 밤마다 내려와 목욕했다는 열두 개의 탕이 있다는 전설, 그 이름만으로도 충분히 낭만이 있을 거 같습니다. 강원도 인제군 북면에 위치한 이곳은 대한민국 명승 제98호로 지정된 곳으로, 남교리탐방지원센터에서 복숭아탕(용탕폭포)까지 편도 4.2km 구간을 왕복하는 코스입니다. 전날 백담사 길을 걸었던 저는 이번엔 물소리를 제대로 듣고 싶어 일찍 출발했습니다.
계곡 트레킹 실제 경험
혹시 "왕복 8km 정도면 가볍게 다녀올 수 있겠네요"라고 생각하셨나요? 저도 처음엔 그랬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걸어보니 생각보다 돌길과 계단 구간이 많아서 "산책"이라기보다는 "가벼운 등산"에 가까웠습니다. 특히 응봉폭포를 지나고 나면 경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데, 이때부터는 체력 배분이 중요해집니다. 여기서 트레킹이란 산을 오르는 등산과 달리 계곡이나 평지를 따라 걷는 활동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정상을 목표로 하지 않고 자연을 즐기며 걷는 방식입니다. 이곳 탕은 트레킹 코스지만 중간중간 급경사 계단과 데크길이 섞여 있어 초보자라면 준비가 필요합니다. 제 경험상 등산 스틱은 필수였습니다. 특히 비 온 다음 날이라면 미끄럼 방지 기능이 있는 등산화를 꼭 신으시길 권합니다. 탐방지원센터를 지나자마자 계곡 소리가 우렁차게 들려왔습니다. 데크길, 흙길, 돌길이 번갈아 나오는데 모두 비교적 잘 정비되어 있었습니다. 다만 돌부리가 튀어나온 구간이 많아 발밑을 계속 확인해야 했습니다. 저는 다리 힘이 빠질 때쯤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편이라, 일부러 속도를 늦추고 스틱에 체중을 실으며 걸었습니다. 아내와 함께 걷는 분이라면 서로 보폭을 맞추느라 급해지지 않도록 "10분 걷고 1분 숨 고르기" 같은 리듬을 정해두면 훨씬 편합니다. 길을 걷다 보면 탕수교, 흑백교 같은 다리들이 나옵니다. 물이 끓는 듯 흐른다 해서 탕수교, 바위가 흑백으로 나뉘어 경쟁한다는 전설이 담긴 흑백교. 이런 스토리텔링 덕분에 길이 더 재미있어졌습니다. 다만 이 구간에서도 발밑 돌부리가 많아 풍경에 취해 걷다간 걸려 넘어지기 쉽습니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자료에 따르면 계곡 트레킹 중 발생하는 안전사고의 약 40%가 미끄러짐과 발목 부상이라고 합니다(출처: 국립공원공단). 그래서 저는 풍경 사진을 찍을 때도 "한 발만 뒤로" 원칙을 지켰습니다. 응봉폭포를 지나면서 숲이 더 우거지고 양치식물과 이끼가 많아 원시림 같은 분위기가 짙어졌습니다. 마지막 1.2km쯤 남으면 철제 데크와 전망대가 나오며 계곡을 시원하게 내려다볼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부터는 계단이 본격적으로 나오니 물을 자주 마시고 숨이 차면 멈춰서 정리하는 게 좋습니다. 저는 그날 날씨가 좋아 길이 많이 마른 편이었지만, 비가 온 다음 날이라면 같은 구간도 체감 난이도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용탕폭포(복숭아탕)와 안전수칙
드디어 복숭아탕 전망대(용탕폭포)에 도착했을 때, "잘 왔다"는 말밖에 안 나왔습니다. 바위와 물이 만든 조각 같은 풍경, 폭포 소리, 시원한 바람이 모든 피로를 씻어주는 듯했습니다. 이곳의 핵심은 바로 '폭 호(Plunge Pool)' 지형입니다. 여기서 폭호란 폭포 아래에 형성된 깊은 웅덩이를 의미합니다. 폭포에서 떨어진 물과 함께 모래, 자갈 등이 기반암을 오랜 시간 침식하여 만들어진 지형으로, 십이선녀탕의 복숭아탕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쉽게 말해 물이 계속 같은 자리를 파내어 만든 천연 욕조 같은 것이죠. 실제로 복숭아탕은 복숭아처럼 둥글고 깊은 구멍 모양을 하고 있어 붙여진 이름입니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설악산 일대는 화강암과 편마암으로 이루어진 암반 제대로, 물에 잘 녹는 성분이 녹아내리며 이런 독특한 형태의 폭호를 만들어낸다고 합니다(출처: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십이선녀탕에는 실제로 8개의 탕이 확인되는데, 물의 양과 계절,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개수가 다르게 보일 수 있습니다. 저는 전망대에서 간식으로 가져온 고구마와 감자를 꺼내 폭포 소리를 들으며 먹었습니다. 잠깐이나마 신선놀음 하는 기분이었죠. 주변에 등산객들도 하나둘 모여 각자 간식을 먹는 모습이 천상의 정찬 같았습니다. 다만 이곳도 사람이 많아지면 자리가 협소하니, 간식은 간단하게, 쓰레기는 꼭 챙겨 나오는 것까지가 완성입니다. 하산하며 다시 한번 계곡을 내려다보니, 십이선녀탕은 "힘들게 올라가서 보는 곳"이라기보다 걷는 내내 마음이 씻기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소리 하나만으로도 생각이 정리되는 길. 특히 제가 방문했던 가을에는 단풍이 절정을 지나 낙엽이 쌓이고 있었지만, 그 낙엽조차 쏟아진 계곡과 어우러져 한 폭의 수채화처럼 아름다웠습니다. 다만 처음 가시는 분들께 꼭 당부드리고 싶은 안전 수칙이 몇 가지 있습니다.
- 미끄럼 주의: 바위 위 이끼와 젖은 돌은 예상보다 훨씬 미끄럽습니다. 특히 물가 가까이 접근할 때는 반드시 한 발씩 디디며 이동하세요.
- 물가 접근 제한: 사진 욕심에 물가 바위 위로 올라가는 것은 위험합니다. 전망대에서도 충분히 좋은 사진을 건질 수 있습니다.
- 페이스 조절: 중간에 힘들다고 느껴지면 무리하지 말고 자주 쉬어가세요. 특히 응봉폭포 이후 경사 구간에서는 체력 배분이 중요합니다.
평일 오전에 출발했는데도 오후가 되자 사람들이 부쩍 늘었습니다. 주차장도 설악산의 올해 마지막 단풍을 보려는 차량들로 가득 찼습니다. 계절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곳이지만, 개인적으로는 가을 단풍 시즌과 여름 계곡물이 시원한 시기를 추천합니다. 한 번 다녀오면 선녀가 내려왔다는 상상이 괜히 낭만으로 오래 남을 겁니다. 안전 수칙만 지킨다면 이 길은 정말 "또 가고 싶다"는 마음을 남기는 곳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