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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 절을 보러 간다는 게 솔직히 저도 처음엔 '그냥 절 하나 더 보는 거겠지'라는 마음으로 따라나섰습니다. 그런데 막상 광주 무등산 증심사에 다녀오고 나니, 그 생각이 완전히 틀렸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 홀로 걸은 그 길이, 여행 전체를 통틀어 가장 오래 남는 장면이 되었습니다.

세계지질공원과 주상절리

그냥 광주에 있는 큰 산 정도로 알고 있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세계지질공원센터에 들어가 설명을 들으면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무등산은 2018년 4월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UNESCO Global Geopark)으로 등재된 곳입니다.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이란, 지질학적으로 세계적인 가치를 가진 지역을 유네스코가 공식 인정한 구역을 의미합니다. 단순히 경치가 좋다는 이유로 지정되는 게 아니라, 지구 역사를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지형·지질 요소가 있어야 한다는 조건을 충족해야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 청송에 이어 세 번째로 인증받은 곳이 바로 무등산이고, 2023년에는 재인증까지 완료했습니다(출처: 국립공원공단). 무등산이 이 인증을 받은 핵심 이유는 산 정상부에 있는 주상절리대(柱狀節理帶)입니다. 주상절리란 용암이 식으면서 수축할 때 만들어지는 육각형 기둥 모양의 암석 구조를 말합니다. 제주도 해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 기둥 모양 돌들이 바로 주상절리입니다. 일반적으로 주상절리는 바닷가처럼 낮은 고도에서 형성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무등산의 서석대·입석대·광석대는 해발 1,000m가 넘는 산봉우리에 형성되어 있습니다. 제가 직접 설명을 듣는 순간, "이게 왜 세계적으로 희귀한지" 바로 이해가 되었습니다. 이런 고산 지대의 주상절리는 전 세계를 통틀어도 사례가 드물다고 합니다. 이번 방문에서 정상까지 오르지 못한 건 아직도 조금 아쉽습니다. 서석대와 입석대는 다음 기회로 미룰 수밖에 없었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다음엔 꼭 날 잡아서 정상까지"라는 목표가 생겼습니다. 아빠와도 이날 그 약속을 했습니다. 2013년 3월 4일 우리나라 21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습니다(출처: 환경부 국립공원). 국립공원 지정의 기준은 단순한 자연보호 구역이 아니라, 생태계·지형·문화적 가치를 종합적으로 심사한 결과입니다. 무등산은 그 세 가지를 모두 갖추고 있는 곳이라는 걸, 이번에 처음으로 제대로 실감했습니다. 접근 방법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습니다. 저는 수완동에서 49번 버스를 타고 이동했고, 네이버 지도에서 '증심사'를 검색하면 대중교통 경로가 상세히 안내됩니다. 중간에 증심사 셔틀버스 탑승 지점도 있지만, 아빠와 걸으면서 계곡 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그 길이 더 좋았습니다. 양쪽으로 흐르는 계곡 소리가 예상보다 훨씬 크고 맑아서, 걸음을 멈추고 한참을 듣고 싶었습니다.

 

무등산 증심사 사찰 사진
무등산 증심사 사찰 사진

증심사에서 만난 문화재

사찰은 그냥 조용한 공간이라고만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도 솔직히 그런 편이었습니다. 그런데 증심사는 들어서는 순간부터 달랐습니다. 사천왕문을 지나 경내로 들어서자마자 스님들의 불경 소리가 낮게 울려 퍼졌습니다. 그 소리가 귀에 들어오는 순간, 여행 내내 쌓였던 머릿속 잡생각들이 조용해지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찰 방문은 관람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제 경험상 증심사는 그냥 서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정리되는 공간이었습니다. 증심사 경내에서 확인할 수 있는 주요 문화재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증심사 3층 석탑 (광주 유형문화재 제1호): 통일신라 양식을 계승한 고려 초기 석탑
  • 철조비로자나불좌상 (보물 제131호): 통일신라시대 철로 제작된 불상으로 증심사 최고 등급 문화재
  • 증심사 오백전 (광주 유형문화재 제13호): 6·25 전쟁 중 유일하게 소실되지 않은 조선시대 건물

철조비로자나불좌상(鐵造毘盧遮那佛坐像)이라는 명칭에서 '철조'란 철로 만들었다는 뜻이고, '비로자나불'은 우주 진리 자체를 형상화한 법신불(法身佛)을 의미합니다. 법신불이란 형태를 가진 부처가 아닌, 진리 그 자체를 불 격(佛格)으로 본 개념으로 불교 교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금속으로 만들어진 불상치 고는 오랜 시간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앞에 서 있을 때 묘한 무게감이 느껴졌습니다. 오백 전은 제가 특히 오래 머물렀던 공간입니다. 오백전(五百殿)이란 부처님의 500명 제자를 모신 전각을 말하며, 각 제자상이 전부 다른 표정과 자세를 하고 있어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전쟁 중 유일하게 불타지 않은 건물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 다시 보니, 그 오래된 목재 기둥 하나하나가 다르게 보였습니다. 그곳에서 가족의 건강을 조용히 빌었는데, 그 순간이 이번 여행에서 가장 차분하고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사천왕문의 사천왕상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소조상(塑造像)이란 흙을 빚어 만든 조각상을 의미하는데, 경주 불국사에서 본 금속 재질의 위압적인 사천왕상과 달리 흙으로 빚어서인지 전체적으로 부드럽고 친근한 인상을 줍니다. 제가 직접 비교해 보니 이 차이가 생각보다 컸습니다. 현재의 사천왕문과 사천왕상은 2012년 복원된 것이지만, 그 공간에 담긴 역사적 맥락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하산길에는 의재미술관 외관도 둘러보았습니다. 한국 남종문인화(南宗文人畵)의 대가로 불리는 의재 허백련 선생을 기리는 미술관인데, 남종문인화란 중국 남종 화풍의 영향을 받아 문인들이 그린 수묵 중심의 회화 양식을 말합니다. 미술관 건물이 무등산의 자연 경사를 그대로 살려 지어졌다는 점이 눈에 띄었고, 한국건축문화대상을 수상한 이유가 납득되었습니다. 추석 당일이라 내부는 휴무였지만, 외관과 기념품 숍에서 본 수묵화 디자인 소품들만으로도 충분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오랜만에 찾은 광주 무등산 증심사는 단순히 구경하고 오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아빠와 걸으며 나눈 대화, 계곡 소리, 오백 전에서의 조용한 시간이 하나로 엮여 여행 전체에서 가장 묵직한 여운을 남겼습니다. 바쁜 일상에서 잠깐 벗어나고 싶을 때, 화려한 관광지 대신 이런 공간을 선택해 보시길 권해드립니다. 다음번에는 꼭 서석대까지 올라 그 주상절리를 직접 눈으로 확인해 보겠습니다.


참고: https://blog.naver.com/nohsk0506/224192510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