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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처음엔 "정원이 뭐 얼마나 크겠어"라고 생각했습니다. 남해 여행 일정을 채우려고 반쯤 시간 때우기용으로 넣은 곳이었는데, 막상 들어서는 순간 그 생각이 완전히 뒤집혔습니다. 경상남도 민간정원 제1호, 섬이정원. 두 시간을 훌쩍 넘겨 나오면서 오히려 시간이 모자랐다는 생각을 처음 해봤습니다. 

 

위에서 보는 정원 사진
위에서 보는 정원 사진

민간 정원 기대 편견 버리기

일반적으로 민간정원이라고 하면 소규모에 아기자기한 수준 정도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섬이정원은 그 선입견을 입구에서부터 조용히 부숩니다. 이곳은 산림청이 선정한 대한민국 아름다운 민간정원 30선에 포함된 곳입니다(출처: 산림청). 한려해상국립공원의 해안선이 내려다보이는 남면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으며, 다랑논의 지형적 고저차를 그대로 살려 11개의 개별 정원 공간을 조성했습니다. 여기서 다랑논이란 산비탈이나 언덕을 계단식으로 깎아 만든 좁은 논을 말하는데, 섬이정원은 이 계단형 지형을 평탄하게 밀지 않고 그대로 활용해 각 정원이 자연스러운 높낮이 차이를 갖도록 설계했습니다. 이 구조가 실제로 걷다 보면 굉장히 인상적입니다. 한 공간에서 다음 공간으로 넘어갈 때마다 시야가 달라지고, 같은 방향을 바라봐도 보이는 풍경이 다릅니다. 궁궐 건축에서 담과 문으로 공간을 분절하면서도 서로 연결하는 방식, 즉 공간의 시퀀스(sequence) 개념이 이 정원에 그대로 녹아 있습니다. 시퀀스란 공간과 공간이 이어지는 흐름과 순서를 의미하는데, 걷는 사람이 자연스럽게 다음 공간으로 유도되도록 설계하는 조경의 핵심 원리입니다. 섬이정원의 기본 방문 정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운영 시간: 매일 오전 9시 ~ 오후 6시 (연중무휴)
  • 입장료: 성인 5,000원 / 청소년·군인 3,000원 / 어린이 2,000원 / 경로 4,000원
  • 주차: 매표소 인근 넓은 주차장 무료 운영
  • 소요 시간: 사진 촬영 포함 시 약 2시간 내외

주차장은 매표소 바로 옆에 있어 찾기 어렵지 않았습니다. 비수기에는 무인 키오스크로 운영되는데, 성인 6명 기준 총 3만 원이었습니다. 두 시간을 훌쩍 넘게 있었으니 가성비로는 충분히 납득이 됩니다.

표정이 달라지는 유럽식 정원

정원은 계절별로 피는 식물이 다릅니다. 봄에는 수선화와 튤립, 여름에는 수국, 가을에는 억새, 겨울에는 동백이 정원을 채웁니다. 일반적으로 "정원은 봄이나 여름에 가야 제맛"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제 경험상 11월 말도 생각보다 볼 것이 꽤 있었습니다. 억새와 겨울 초입의 동백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이름 모를 야생화들도 곳곳에 남아 있었습니다. 다만 솔직하게 말하자면, 화사한 꽃이 만개한 시기와 비교하면 확실히 아쉬움이 남는 건 사실입니다. 이건 제가 직접 걸어보고 느낀 부분입니다. 그래서 다음에는 수국이 피는 초여름, 혹은 수선화 시즌인 이른 봄에 다시 오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정원의 구조는 식재(植栽) 방식에서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식재란 조경에서 나무나 풀 등 식물을 계획적으로 심어 배치하는 것을 말하는데, 섬이정원은 정형적인 유럽식 배치와 자연스러운 한국 전통 정원의 감각이 함께 섞여 있습니다. 모네정원에서는 연못과 수생식물의 배치가 인상파 화가 클로드 모네의 지베르니 정원을 연상시키고, 메도우가든(Meadow Garden)은 초원형 자연 식재 방식을 따릅니다. 메도우가든이란 잔디 대신 야생화와 풀을 자연스럽게 자라도록 두는 정원 형태를 뜻하며, 관리 손길을 최소화해 자연의 흐름을 그대로 살리는 것이 특징입니다. 계류정원에서는 물 흐르는 소리가 먼저 반겼습니다. 잔잔하게 흐르는 물과 연못에 비친 하늘, 그 위에 띄워진 꽃. 사진을 찍지 않아도 충분히 눈에 담을 수 있는 풍경이었습니다. 하늘연못정원에서는 마지막에 짝꿍이 물고기를 찾겠다며 한참 연못을 들여다보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오히려 이 정원과 가장 잘 어울렸습니다. 돌담정원을 지나면 갑자기 시야가 열리면서 남해 바다가 펼쳐집니다. 이 장면이 섬이정원에서 제가 가장 좋았던 순간이었습니다. 정원이 배경이 되는 게 아니라, 바다가 정원의 배경이 되는 구입니다..

힐링이 되는 정원

이번 방문은 부모님과 함께였습니다. 그래서 더 천천히 걸었고, 덕분에 더 많이 보였습니다. 곳곳에 쉴 수 있는 의자가 배치되어 있어 연세 있는 분들도 부담 없이 둘러볼 수 있었습니다. 분수 앞에서 제가 도착하기도 전에 먼저 포즈를 잡고 계셨던 아버지, 꽃 앞에서 환하게 웃으시던 어머니. 여행이 주는 가장 좋은 장면들이 이 정원에서 나왔습니다. 섬이정원은 빠르게 체크리스트를 채우듯 돌면 심심할 수 있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천천히 걸어야 진가가 보이는 곳입니다. 숨바 꼭 같은 이름이 붙은 공간에서는 아이처럼 웃게 되고, 숲 속정원을 지날 때는 캠핑장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11개의 정원이 각자 다른 분위기를 가지고 있어 같은 느낌이 반복되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좋았습니다. 국내 정원 관광의 성장세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자연·힐링 테마 관광지에 대한 수요는 최근 수년간 꾸준히 증가 추세에 있습니다(출처: 한국관광공사). 이런 흐름 속에서 섬이정원처럼 지역 지형을 활용한 민간정원이 주목받는 건 자연스러운 결과입니다. 화려한 인프라보다 조용하고 섬세한 공간을 찾는 여행자들에게 이곳이 맞아떨어지는 이유가 있습니다. 남해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섬이정원을 보리암이나 독일마을, 다랭이마을과 묶어서 동선을 짜는 것을 권합니다. 거리도 가깝고, 분위기가 다른 여러 관광지를 하루에 묶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봄이나 초여름에 오십시오. 저는 다음번엔 수선화가 피는 시기를 골라 다시 올 예정입니다. 가을 끝자락에도 이 정도였으니, 꽃이 가득한 계절의 섬이정원은 얼마나 더 화사할지 기대가 됩니다.


참고: https://blog.naver.com/romosh/2237583224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