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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수십 번 봤는데 막상 가면 실망하는 관광지, 한 번쯤 겪어보셨을 겁니다. 그런데 보리암은 정반대였습니다. 직접 올라선 순간, 사진이 오히려 이 풍경을 너무 초라하게 담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차 대기 25분, 도보 20분. 그 과정까지 포함해서 보리암 방문 전에 알았으면 좋았을 것들을 정리해 드립니다. 모두에게 강력하게 추천합니다.
주차 대기 덜 지치는 법
오후 2시경 도착했을 때 차들이 두 줄로 길게 늘어서 있었습니다. 솔직히 저도 처음엔 한숨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막상 기다리다 보니 체계는 있었습니다. 양쪽 줄에서 한 대씩 번갈아 올려 보내는 방식이었고, 제 경우 약 25분 만에 제2주차장 진입 대기선까지 닿을 수 있었습니다. 담에는 좀 일찍 서둘러야겠다고 다짐합니다. 보리암 주차장은 크게 두 곳입니다. 산 아래쪽 제1주차장에 주차하고 마을버스 셔틀을 이용하는 방법과, 직접 차를 몰고 제2주차장까지 올라가는 방법입니다. 셔틀 이용 시 주차비 2,000원에 셔틀 왕복 2,500원이 추가되며, 셔틀 막차는 오후 5시입니다. 자차로 올라갈 경우 주차비는 중형 기준 5,000원입니다. 제가 자차를 선택한 건 이유가 있었습니다. 금산의 구불구불한 산길을 직접 오르는 경험 자체가 보리암 방문의 일부라고 생각했거든요. 다만 산길이 경사가 상당하고 커브가 많아 운전 미숙자에게는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산길에서 차가 퍼지거나 사고가 났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어서, 차에 무리가 갈 것 같다면 셔틀을 적극 추천합니다. 방문 전 미리 알아두면 좋을 기본 정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입장료: 성인 1,000원 / 어린이 무료
- 주차비: 제2주차장 중형 5,000원 / 제1주차장 2,000원
- 셔틀: 왕복 2,500원, 막차 17:00
- 문화재 관람료 면제 대상: 장애인, 경로, 국가유공자
- 애완동물 출입 금지
도보 코스 멈추게 되는 이유
제2주차장부터는 걸어야 합니다. 보리암까지 도보로 15~20분 거리입니다. 처음엔 "그게 뭐가 힘들겠어" 싶었는데, 실제로 걸어보면 언덕길이 제법 이어집니다. 겨울에도 덥다는 말을 괜히 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여름에 방문하신다면 물을 반드시 챙기시길 권합니다. 그럼에도 이 길이 좋은 이유가 있습니다. 무성한 나무들이 터널처럼 그늘을 만들어 주고, 걷다 보면 중간중간 남해 바다가 불쑥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 순간마다 발걸음이 저절로 멈춰집니다. 약 8분 정도 걸었을 때 첫 번째 포토존이 나옵니다. 여기서 저는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다도해(多島海)가 한눈에 펼쳐지는 자리였는데, 다도해란 크고 작은 섬들이 바다 위에 무수히 흩어져 있는 지형을 말합니다. 남해 앞바다가 바로 그런 풍경이었습니다. 섬들이 겹겹이 쌓인 것처럼 보이는데, 어떤 사진 필터로도 그 깊이감을 담을 수 없다는 게 제 솔직한 생각입니다. 주변 사람들 모두 같은 표정이었습니다. 카메라를 들고 있다가 그냥 내려놓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사진보다 눈에 담는 게 낫다고 판단하는 그 표정, 충분히 이해가 되었습니다.
보리암과 해수관음상
계단이 보이면 거의 다 온 것입니다. 이 계단을 오를 때 묘하게 마음이 차분해지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보리암은 신라 신문왕 3년(683년)에 원효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는 유서 깊은 사찰입니다. 조선 태조 이성계가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드리고 왕위에 오른 뒤 왕실의 원당으로 삼았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현재는 양양 낙산사 홍련암, 강화 석모도 보문사와 함께 한국 3대 관세음보살 성지로 꼽히며, 전국 3대 기도처의 하나로도 불립니다(출처: 문화재청 국가유산포털). 해수관음상 앞에 서면 이상하게 조용해집니다. 저는 종교를 특별히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그 순간만큼은 두 손을 모으게 되었습니다. 바닷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멀리 수평선이 보이고, 사람들이 소리 없이 기도하는 뒷모습이 겹쳐지는 그 분위기는 단순한 관광지와는 결이 달랐습니다. 보리암 전 삼층석탑도 놓치지 마시길 권합니다. 탑 높이는 2.3m로 생각보다 크지 않습니다. 이 탑은 비보탑(裨補塔)의 성격을 지닌다고 알려져 있는데, 비보탑이란 풍수지리상 땅의 기운이 약한 지점을 보완하기 위해 세우는 탑을 의미합니다. 허황옥이 인도에서 가져온 돌로 만들었다는 설과 원효대사가 절 창건을 기념해 세웠다는 설이 있지만, 탑의 양식으로 보아 고려 전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됩니다(출처: 문화재청 국가유산포털). 역사와 풍수, 신앙이 한 자리에 쌓여 있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조금 더 올라 화엄봉(華嚴峰) 방향으로 발길을 옮기면 망원경이 놓인 전망 지점이 나옵니다. 화엄봉은 신라 원효대사가 이 바위에서 화엄경을 읽었다는 데서 이름이 유래한 곳으로, 금산 31경 중 하나입니다. 그곳에서 바라보는 금산 능선과 다도해의 조합은 보리암 본당에서 보는 것과 또 다른 감동이었습니다.
금산산장 라면 강력하게 추천
보리암에서 조금 더 걸으면 금산산장이 나옵니다. 바위틈 사이에 자리 잡은 연두색 지붕의 산장인데, 오래된 나무 팻말이 오히려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어냅니다. 저는 주차장에서 출발해 구경하며 올라오니 오후 3시쯤 도착했습니다. 여기 메뉴는 단순합니다. 컵라면과 파전, 식혜 정도입니다. 처마 아래 온수통이 줄지어 있고, 라면은 안쪽 할머니께 계산하고 직접 가져오는 방식입니다. 맛이 특별하다기보다는 '상황'이 특별합니다. 힘들게 올라온 뒤, 푸른 남해 바다를 내려다보며 먹는 라면 한 사발과 식혜 한 모금. 제 경험상 이건 음식을 먹는다기보다 풍경을 먹는 것에 가깝습니다. 앉는 자리 중 왼쪽에서 두 번째 자리가 전망이 가장 좋다는 걸 현장에서 알게 됐는데, 미리 알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산행 후 이 자리에서 바람을 맞으며 먹는 라면,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라는 표현이 딱 맞았습니다. 내려올 때는 온 길을 다시 내려가야 합니다. 경사길인 만큼 무릎에 부담이 올 수 있으니 스틱이 있다면 챙기는 게 좋습니다. 차로 내려올 때도 브레이크에 의존하게 되는 구간이 있어 안전운전이 필수입니다. 보리암을 한 번 다녀온 지금, 다음 방문은 더 여유 있게 계획하고 싶습니다. 해수관음상 앞에서 더 오래 바다를 바라보고, 금산산장에서 파전까지 시켜놓고 천천히 앉아 있고 싶습니다. 남해 여행 일정을 짜고 계신다면 보리암은 가장 먼저 날을 잡아두시길 권합니다. 주차 대기도, 숨이 차는 오르막도, 다 올라선 뒤에는 딱 한마디만 나옵니다. "기다린 시간이 아깝지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