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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강화성당이 사찰인 줄 알았습니다. 용흥궁 공원을 걷다가 처음 본 순간, 한옥 지붕에 익숙한 기와와 처마가 눈에 들어왔거든요. 그런데 가까이 다가가 보니 지붕 끝에 십자가가 서 있더군요. 초여름의 푸른 기운이 가득한 날, 저는 우연처럼 한국 최초의 한옥 성당을 만났습니다. 그때 느낀 건, 우리나라 근대사의 숨결이 이렇게 아름다운 건축물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강화 한옥 성당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기 직전, 강화도를 찾았습니다. 강화대교를 건너자마자 느껴지는 시원한 바닷바람이 제일 먼저 저를 반겼습니다. 저는 강화산성 동문 근처 공용주차장에 차를 세웠는데, 주차비가 무료라는 점이 마음을 편하게 했습니다. 주차장에서 성당까지는 천천히 걸어 올라가야 했습니다. 조금 걷다 보면 강화 직물 산업의 중심지였던 '심도직물' 터와 거리를 만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직물 산업이란 과거 강화도가 면직물 생산의 거점이었던 시절을 의미하는데, 지금은 그 흔적만 남아 있습니다(출처: 강화군청 문화관광). 번성했던 옛 산업의 자취를 따라 걷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그 길 끝에는 조선 25대 임금 철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 살았던 '용흥궁'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소박하면서도 기품 있는 건축물을 천천히 돌아보며, 왕이 되기 전 이곳에서 평범하게 살았을 소년 철종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용흥궁 공원 전체가 초여름 녹음으로 가득했고, 막 돋아난 나뭇잎들이 저마다 푸르름을 뽐내고 있었습니다. 직접 걸어보니 이 공원 전체가 완만한 언덕 지형이더군요. 가장 높은 지점에 강화성당이 자리 잡고 있어서, 올라갈수록 기대감이 커졌습니다. 뜨거워지는 햇살 속에서도 울창한 나무들이 내어주는 시원한 그늘 덕분에 걷는 내내 마음이 편안했습니다.
놀라운 조화 용흥궁
용흥궁 공원을 한 바퀴 돌아 나오자 드디어 대한성공회 강화성당이 위엄 있게 나타났습니다. 대한민국 사적 제424호로 지정된 이곳은 1900년 초대 교구장 고요한 신부가 세운 우리나라 최초의 한옥 성당입니다(출처: 문화재청). 원래 이름은 '성 베드로와 바울로 성당'이었다고 합니다. 저는 성당 입구에 서서 한참을 올려다보았습니다. 외관은 영락없는 전통 한옥이었거든요. 기와지붕, 처마, 단청까지 모두 우리 전통 건축 양식 그대로였습니다. 그런데 지붕 끝 좌우에 세워진 십자가가 이곳이 성당임을 알려주고 있었습니다.
성당 앞마당에는 범종각과 비슷한 형태의 종루가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사찰의 범종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표면에 십자가가 새겨져 있더군요. 여기서 범종각이란 절에서 큰 종을 보관하고 타종하는 건물을 말하는데, 성당에서 이런 구조를 채택한 것이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성당 터는 방주, 즉 노아의 방주를 의미하는 배 형상으로 설계되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경사진 언덕 위에 자리 잡은 성당의 모습이 배가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오래된 목조 건물 특유의 향기가 코끝을 스쳤습니다. 내부는 서양의 바실리카 양식으로 지어졌습니다. 바실리카란 초기 기독교 시대부터 사용된 장방형 평면의 건축 양식으로, 중앙의 긴 복도(네이브)와 양옆의 측량으로 구성되는 구조를 말합니다. 한옥 외관 안에 서양식 성당 내부가 들어선 이 독특한 조화가 정말 놀라웠습니다. 정중앙에는 국가문화재 제705호로 지정된 제대와 세례대가 있었습니다. 돌에 새겨진 한자를 읽어보니 다음과 같았습니다.
- 수기(修己): 몸을 바르게 하고
- 세심(洗心): 마음을 깨끗이 하고
- 거악(去惡): 악을 제거하고
- 작선(作善): 선을 행한다.
종교와 상관없이 마음을 다잡게 하는 문구였습니다. 제가 특히 인상 깊었던 건, 이 네 글자가 유교적 수양론과도 맞닿아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동서양의 사상이 이렇게 자연스럽게 어우러질 수 있다는 게 신기했습니다. 벽면에는 강화성당의 역사를 보여주는 흑백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1900년대 초반 사진부터 시작해 성당의 변천사를 한눈에 볼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이곳에서 실제 미사가 집전되고 있어서, 단아하면서도 웅장한 무게감이 느껴졌습니다.
초여름의 풍경
본당을 나와 뒤쪽으로 돌아가니 사제관이 있었습니다. 이곳은 사찰의 요사채처럼 성직자들이 생활하는 공간으로, 일반인은 출입하기 어려운 곳이었습니다. 요사채란 절에서 스님들이 기거하는 건물을 뜻하는데, 성당에서도 비슷한 기능의 건물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사제관 근처에는 126년 된 보호수인 보리수나무가 커다란 그늘을 만들어주고 있었습니다. 보리수는 불교에서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나무로 여겨지는데, 성당 경내에 이 나무가 자리하고 있다는 것도 의미심장했습니다. 각 나라의 지역 문화와 전통을 존중하고 조화를 이루려는 성공회의 노력이 이런 세부적인 부분에서도 드러나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성당 앞마당 벤치에 잠시 앉아 경치를 바라보았습니다. 강화성당은 용흥궁 공원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어서, 아래쪽 공원 전체가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초여름의 풍성한 녹음 사이로 용흥궁의 한옥 지붕이 보이고, 멀리 강화 시내의 풍경까지 펼쳐졌습니다. 직접 와보니 이곳은 사계절 언제 와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가을에 단풍이 물들 때쯤 다시 오면 그 고즈넉함이 절정에 달할 것 같다는 기분 좋은 상상을 했습니다. 밤이 되면 화려한 조명이 성당을 비춘다는데, 야경을 보지 못한 것이 조금 아쉬웠습니다. 다음에는 해질 무렵에 와서 조명이 켜지는 순간을 꼭 보고 싶습니다. 성당 운영시간은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며, 월요일은 휴관입니다. 저는 평일 오후에 방문했는데, 사람이 많지 않아 조용히 둘러보기 좋았습니다. 저는 종교가 없지만, 이 성당은 종교와 상관없이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우리 전통 한옥에 서양의 신앙이 깃든 모습은 동서양의 조화가 무엇인지 몸소 보여주는 듯 무척이나 멋스러웠습니다. 제가 사는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이렇게 근사한 공간이 있다는 사실이 큰 선물처럼 느껴졌습니다. 강화성당을 다녀온 후, 한국 근대사에서 외래문화가 우리 전통과 어떻게 만나고 융합했는지 실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훌쩍 떠나 마음을 채우고 싶은 분들께, 이곳을 꼭 한번 다녀오시길 추천합니다. 다음에는 인근의 용흥궁도 더 자세히 둘러보고, 강화 시내의 다른 근대 유적지들도 함께 방문해보고 싶습니다.

